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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로 연재 "교사와 학부모의 소통 이루는 '행복한 성적표'

하계방학을 맞이할 즈음 전국의 학교는 평가(評價)의 계절이라고 할 정도로 정신이 없다. 자신이 수업하는 학생들에 대한 개별평가 작성과 학급을 담임하고 있는 교사의 경우에 담당 학생들에 대해 입력할 분량이 엄청나다. 정작 어떤 것을 평가하고, 어떤 평가의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분주하다.


행복한 성적표 보내기 운동

소명중고등학교는 지난 2010년 5월 교육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시작한 ‘행복한 성적표 보내기 운동’과 맥락을 같이 하는 성적표를 가정으로 발송하고 있다. 등급과 점수 위주가 아닌 학생의 배움과 성장 과정을 기록하여 보내는 것이 핵심이다. 사실 취지(趣旨)는 좋으나 현실적인 업무가 너무 많아 일반학교에서는 묻혀버리고 말았다. 아쉬운 대목이다. 그나마 몇몇 학교가 취지에 공감하고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행복한 성적표’를 발송하고 있다.

나는 세 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이게 뭐가 자랑이냐고 핀잔을 들을지 모른다. 사실 아들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평가와 관련해 떠오른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와 둘째 모두 어린이집을 다녔는데 인상 깊었던 것은 ‘원아수첩’이라는 것이다. 선생님이 매일 일기를 쓰듯이 원아상태, 식사, 수면, 배변상태, 특이사항을 적어 가정으로 보내준다. 그리고 가정에서 식사, 수면, 배변상태, 특이사항을 적어서 다시 어린이집으로 보내면 선생님이 읽어본다. 어느 날은 수첩에 컬러 프린터로 출력한 활동사진을 붙여서 정성스럽게 가정으로 보내주기도 한다. 수첩을 읽으면 어린이집에서 어떤 활동이 있었는지 알 수 있고, 아이에 대해 이해가 잘 된다.

이것이 평가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나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원아수첩’이나 ‘행복한 성적표’나 학생에 대한 ‘지속된 관심’을 바탕으로 해서 쓰인다는 점이다.

지난 신동신정보산업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원아수첩’에 착안(着眼)하여 ‘관찰일지’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래서 담임한 학생들이 학교생활 하면서 특이한 사항이 있을 때마다 날짜별로 기록했다. 상담에도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매 학기 성적표를 가정으로 발송하기 전 담임교사가 코멘트를 써야 할때 ‘관찰일지’를 읽어보고 요약하면 쉽게 마무리되었다. 복사, 붙이기와 같은 단순작업을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1학기 동안 학교생활에서 어떤 부분이 변화하고 성장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어주도록 노력했다. 학부모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자녀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정성껏 써서 보내준 ‘원아수첩’을 받아본 경험이 있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힘들 때마다 자신에게 말했다. ‘내 자녀를 믿고 맡겨도 될 교사의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 결국, 시간을 쪼개야 했지만 보람되었다. 학부모에게 신뢰받는다는 건 높은 성적을 유지해주거나 성적을 올리는 교사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학부모가 학교를 믿고 맡겨준 자녀를 내 자녀 돌보듯 하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따라서 ‘행복한 성적표’는 교사와 학부모의 진정한 소통을 지향하는 의미 있는 평가이기에 힘들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소명중고등학교는 4학기(봄․여름․가을․겨울)제로 운영되는 기독교 대안학교이다.(‘대안(代案)’ 대신 ‘원안(原案)’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소명학교에서는 학기가 끝날 때 ‘매듭’이라는 기말고사를 치른다. 일반학교와 달리 무감독 시험을 지향한다. 누군간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코람데오,coram deo) ‘정직한 땀으로 정직한 열매를 맺는다’는 학교철학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소명중․고등학교에서 정직을 교육하기 위해 학기마다 시행하고 있는 무감독시험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한 번 이야기 하고자 한다.

어느 학교에서든지 시험을 마치면 그 결과를 학생에게 통보해준다. 소명학교에서는 ‘아람나눔’이라는 이름으로 ‘행복한 성적표’를 발송하게 된다. ‘아람’은 순우리말로서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밤이나 상수리 따위가 충분히 익어 저절로 떨어질 정도가 된 상태. 또는 그런 열매.’라고 나와 있다. 정직하게 흘린 땀으로 학생들이 맺은 열매를 돌아보자는 의미가 있다. 소명학교의 ‘행복한 성적표’인 ‘아람나눔’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페이지는 학생의 이름, 학년, 반, 번호 그리고 담당멘토의 이름과 학생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단한 인적사항 아래에는 출결 사항이 표시되고, 특기 사항란에는 학교의 행사가 시간순서로 꼼꼼히 기재된다.

두 번째 페이지는 소명중고등학교 신병준 교장 선생님의 편지가 공통으로 한 페이지를 차지한다. 2013학년도 아람나눔 편지의 제목은 ‘그리스도인, 소명인, 그리고 3H’였다. ‘그리스도인’의 명칭은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안디옥 교회에서 시작되었고,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예수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소명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德目)으로 3H(Holy, Honest, Honor)를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3H라는 덕목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갖추어야 할 성품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로 과목별 성적표가 제시된다. 보통 한 과목에 한 페이지가 제공된다. 어떤 과목인지 과목명이 제시되고, 그다음엔 무엇을 배웠는지 주차별로 공부한 내용을 적도록 되어있다. 이 부분을 작성하다 보면 교사가 해당 학생의 평가 내용을 쓴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과연 진도가 적절했는지 학습방법은 내용과 조화를 잘 이루었는지 고민하는 시간이다. 학생평가라고 하지만 개별학생에 대한 아람나눔을 쓰면서 그동안 수업했던 시간을 가만히 되돌아보게 된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학생들에게 ‘역사 되돌아보기’라는 피드백(feedback)을 받았는데 다시 꺼내어 읽어봤다. 다음엔 어느 부분을 더 보완할지를 건설적으로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학생들을 평가하지만 결국 내가 한 수업이기 때문에 성찰의 시간과 병행해 가야 한다.

과목별 평가는 영역별로 그 학생의 이름을 떠올리며 수업과 관련한 인상적인 부분을 적어주려고 노력한다. 교사의 평가는 학생들을 동기부여 하게 할 수 있고, 학생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잘하고 있는 것은 칭찬해 줌으로써 다음 학기에도 지속하도록 격려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이 정도는 일반학교에서도 과목별 교사가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를 통해서 기재하고 있다. 수시지원과 맞물리면서 학부모의 요구사항이 많아진 까닭도 있겠지만, 정말 학생 한명 한명에 대해 최대한 정성껏 써주시는 선생들이 있다. ‘행복한 성적표’의 양식은 아니지만 그 정신을 담아내는 의미 있는 노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소명중․고등학교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평가란 왜 하는 것일까? 결국 학생 자신이 지나온 학기 동안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고, 고쳐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래서 좀 더 변화하고 성장하는 이유를 평가를 놓고 찾게 된다. 현행 대입 시 체제에서 내신 성적에 대한 압박으로 당장 점수를 올려야 하는 것이 최선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평가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가장 극단적으로 평가를 악용(惡用)하는 것이 대학 배치표 옆에 성적표를 놓는 것이다. 단순히 대학가는 도구로만 성적표가 활용된다면 그건 진정한 평가의 가치를 못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가 되는 순간 학생들은 자만심에 빠지거나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평가는 줄 세우기가 아닌 나 자신의 성장을 가늠하는 시금석(試金石)이 되어야 한다.


두 학기마다 이뤄지는 '성찰 나눔'

그런 의미에서 소명중․고등학교에서는 진정한 평가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두 학기마다 한 번씩 ‘성찰나눔’이라는 것을 실시한다. ‘성찰나눔’은 자신의 두 학기 학교생활을 돌아보고 어떤 부분에서 변화하고 성장했는지 또 부족하고, 보완해야 할 영역은 무엇인지 스스로 진솔하게 써보도록 하는 것이다. 선생님의 과목별 평가(아람나눔)를 읽어보는 것도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보는 의미가 있겠지만, 결국 자신의 삶에 주도적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진정성 있게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나눔’을 썼는지가 관건(關鍵)이다. 그래서 7가지 영역에 대한 ‘성찰 나눔’은 학생들이 보내준 원고를 가감 없이 그대로 싣는다. 학생들이 직접 쓴 글은 보호자(학부모)들도 동일하게 읽어보게 된다.

학부모에게 소명중․고등학교 ‘행복한 성적표’인 ‘아람 나눔’에 대한 반응을 들어보면 다른 것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쓴 성찰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을 본다. 아무 생각 없이 학교생활 하는 줄 알았는데 자녀들이 쓴 글을 읽어보니 무언가 많이 느끼고 자랐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젠 검정고시 출신자들에게도 수시전형의 기회가 점점 열리고 있다. 대교협(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수시지원 시 ‘자기소개서’ 공통양식에 다음 4개의 질문이 있다.


1.자신의 성장 과정과 환경이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해 기술하세요(1000자 이내)

2.학교 생활 중 배려, 나눔, 협력, 갈등관리, 리더십 발휘 등을 실천한 사례를 들고 그 과정을 통해 배우고 느낀 점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세요(1000자 이내)

3.지원 동기와 지원 분야의 진로 계획을 위해 어떤 노력과 준비를 해왔는지 기술하고, 본인에게 가장 의미 있었다고 생각되는 교내 활동을 기술하세요. 단, 교외 활동 중 학교장의 허락을 받고 참여한 활동은 포함됩니다.(1500자 이내)

4.대학 입학 후 학업 계획과 향후 진로 계획에 대해 기술하세요(1000자 이내).


4개의 문항 중에 ‘성찰 나눔’과 연관된 부분이 많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성장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결국 나중에 자기소개서에 쓸 말을 고민하거나 비싼 돈을 내면서 컨설팅(consulting)을 받을 이유가 없다.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하고, 성장해 나가는 태도를 지속하면 그것이 자신의 스토리가 될 것이다. 그 안에서 이야기가 많아질 것이다. 대학에서는 그런 스토리가 있는 학생을 선발하게 될 것이다. 아직은 성적을 많이 보는 것 같지만 좌절할 이유가 없다. 대학도 결국에는 그런 스토리가 있는 학생을 뽑는 날이 올 것이기 때문에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정직하게 땀을 흘리고 정직한 열매를 기대하는 책임감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평가는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소명학교의 ‘행복한 성적표’와 ‘성찰 나눔’은 그래서 귀하고 가치 있다.